1.
순간 열받아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정동영이라니. 정동영이 그 자리에 있었다니. 아, 열린우리당 망친 최대주주, 정동영이. 노무현 대통령을 정면으로 짓밟고 죽인 정동영이. 정동영이 수원 연화장에 있었다니. 아. 정말 "욕 나오는" 짓인거다.
왜 정동영을 욕하는지 이제부터 차분히 설명하겠다.
2.
2003년 6월 쯤이었을꺼다. 열린우리당의 탄생 과정이야 다들 아는 분위기고, 비화만 소개하자. 편하게. 일명 천-신-정 세력, 그리고 친노 직계인 개혁당 그룹, 기타 민주당 떨거지 그룹이 합류하여 열린우리당을 만들게 된다. 내세운 명분이야 blablabla 많지만, 개혁당 그룹이 독자 신당보다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이유는 두가지였다. 1. 노짱이 하래서. 2. 새우가 고래를 먹기 위해서.
실제로 개혁당(친노) 그룹이 그때 준비했던 시나리오는 세가지였다. 첫번째, 민주당이 만족할만한(정당구조에 있어) 수준으로 도달했을 경우, 두번째, 민주당 개혁파가 참지 못해 뛰어 나올 경우. 세번째, 독자신당.
첫번째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민주당에 합류,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어보겠다. 가 원칙이었고, 두번째는 당대 당 통합, 세번째는 독자신당, 뭐 이렇게 되는 시나리오였는데, 결국은 첫번째가 나가리되었고, 두번째와 세번째 시나리오의 결합으로 '열린우리당'의 탄생에 이르렀는데, 여기서 딜이 생겼다. 조건은 뭐였느냐? 유시민 장관의 당권 불출마. 그래서 누가 먹었나? 정.동.영.(이건 합의된 상황이었다. 단 조건은, 기간당원제의 수용. 그거였다. 민주적 당 구조를 위한)
[이쯤되면 대충은 알아 들으셨을 거다. 모르겠으면 댓글로 질문하시라]
우여곡절끝에 열린우리당은 창당을 했다. 유시민과 친노세력의 대규모 양보. 신당을 가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대규모 양보. 지킨건, 기간당원제. 상향식 정당원칙. 그거였다. 그게, 친노세력이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이어가는 방식이라 생각하여.
그랬다. 친노는, 그 순간에도 양보를 했다. 착해서가 아니라,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이렇게라도 가야 하겠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까진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3.
일단 이 중간 이야기는 패스하자. 여기서 더 쓰면 정동영에 대해 살의가 일어날 분도 계실꺼다.
기간당원제는 우리당의 마지막 보루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당권파(정동영파)가 무너트리려는 마지막 보루였다. 왜, 그래야 돈 덜 쓰니까. 그랬다. 그들에게는 당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뱃지'와 '공천권'의 문제였던 것이다. 정동영은 '호남의 맹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싶었던 거다. 민모 의원의 치밀한 기획력은 여기서 나왔다.
2005년, 열린우리당은 기간당원제에 사형을 내리려 끝끝내 노력한다. 그 이유? 간단했다. 재보선에서 연패를 계속 한 것이다. 이때가 정세균 비대위 체제였다. 재보선 연패가 사실, '시대 흐름'을 잘못 읽어낸 지도부의 전략공천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기간당원제"의 폐혜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들은 그 대안으로 "여론조사"를 끝끝내 주장한다.
참,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4.
여기서 나와야 할 세력들이 둘 있다. "국참1219"와 "참여정치실천연대"
까놓고 말하자. 저 두 세력은 '출발은 틀릴지라도' 기간당원제 고수라는 큰 뜻은 동일했다. 그러나, 국참세력은 참정연 세력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유? 간단했다. "참정연이 2~30프로의 여론조사는 수용할 수 있다" 라고 발언한 모 중앙위원의 말이 흘러나갔고, 그로 인해, 국참에서는 "참정연은 타협 세력이다"라고 공격하는 계기가 된 거다.
그럴 수 있다. 국참 세력이 보기에는 충분히 참정연 소속의 중앙위원이 중앙위원회에서 그렇게 발언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사실은, 유시민이 꼬까웠던거다- 참정연 세력과의 유일한 통로는 '기간당원제' 뿐이었는데, 그 기간당원제를 참정연이 앞서서 폐지한다! 라는 아주 좋은 빌미가 생기게 된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시민으로 대표되는 참정연 세력에 대한 국참의 왠지 '한발 늦는듯한' 느낌을 가졌다 본다. 그것이 이후 정동영으로 대표되는 '가짜 노무현 세력'에 대한 전면적 지지로 이어졌고) 국참이 참 비겁하게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기간당원제에 대한 '기존세력'의 집요한 공격은 중앙위원회 통과로 달려가기 시작했고, 정작 중요한 선거에서는 '단 한번도' 열린우리당의 기본 합의였던 '기간당원제'는 가동되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은 시작부터, 정치꾼에 의해, 기간당원들은 발기발기 찢기고 있었던 것이다.
5.
그랬다.
친노 직계들은 그렇게 발기발기 찢겨지는 기간당원제를 부여잡고 지켜내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유시민과 이광철, 김원웅이 속했던 참여정치실천연대(구 참여정치연구회)는, 그 모든것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 굴러가는 조직이 장악해버린 열린우리당에서, 그들은 점점 밀리고 있었던 거다. 김근태와의 연대를 통한 유시민, 김두관의 상임중앙위원 진출이라는 쾌거도 이루었지만, 소수파의 한계, 그리고, '그 잘난'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헛소리'에 그들은 철저히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혁당의 그 순진한 사람들이 '굴러보지 않은' 그라운드에서 뛰었던 그 맞지 않은 그라운드에서 그들이 '배워가는' 과정이 너무 늦었다는 거다.
결국 참정연은, 그렇게 해산했다. 기간당원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소수파가 되어버려,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는 그 말도 안되는 이유로. 그리고 노무현의 길을 가는 데에 있어서 친노 직계들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서. 그들은 더이상 '대중조직'이 아닌 '정치조직'이었기 때문에.
6.
그러나,
역으로 '참정연'이 기간당원제를 지키지 않고 타협했다는 '주장'을 한 국참은, 어이없게도 당 주류세력으로서 모든 세력보다 우위에 섰었던, 그래서 열린우리당을 '좌지우지' 했던 정동영을 지지한다. 그가 대선때 노무현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그들도 역시 '기간당원제'를 지키는 '척'만 했던 정동영에게 '돼지아빠'라는 별명까지 줘 가며, 그토록 철저하게 '기꺼이 이용당해' 줬던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그들은 아직도 정동영에 대한 믿음이 있을지 모르겠다)
친노세력, 그렇게 찢겼다. 정동영의 발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겼다. 정동영의 이중플레이는 그토록 치밀했다.
7.
건너뛰자. 중간 불필요한 이야기는.
그러던 중, 노통이 2007년 2월 22일, 탈당 의사를 밝힌다. 간단한 이야기를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22일 저녁 집권 열린우리당 소속 당직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언론의 보도로 나돌던 탈당설을 사실로 확인했습니다."라고 각종 뉴스는 전한다. 정책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정책으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봤다' 라고 주장했던 정동영 계파와, 여러 '인간들에' 의해 그렇게 쫒겨났다. 쫒겨난거 아니라고? 반론, 환영한다.
가슴 칠 일이다. 자신들이 세운 깃발, 스스로 찢었다. "다 노무현 탓이다"가 열린우리당에 감염되어 잠복되어 있었던 것이 본격적 독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치사율 100프로의
8.
정동영은 개인적으로나, 정치적 판단으로나 '노무현을 따라가면 죽는다' 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 2007년 1월 22일 임종인 의원을 시작으로 1월 23일 최재천, 이계안, 1월 28일 천정배, 1월 30일 염동연, 2월 3일 정성호 의원이 연이어 탈당하였다. 이건, 정동영계였다. 더 말하기 싫다.
결국은,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던 친노도 할 수 없이 동의했다. 왜? 쪽수에서 밀렸다. 간단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국회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밟고 지나가야 했고, 이 논리에서 친노는 판단을 잘못하여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잡탕정당'에 몸을 섞음으로서, 노무현의 좌절을 안긴 세력이 되고야 말았다.
개인적으로, 친노가 이 때, '나는 친노다!'라고 선언할 타이밍이었다고 본다. 그 잡탕 정당에서 오히려 죽더라도 사는 길을 갔다면, 오히려, 노통의 방식은 시대정신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또 부인했던' 그들의 세력에서 노무현을 지킬 수 있었다고 본다. 2007년 8월까지는 시간이 남았던 터, "의원직"을 잃기 싫었던 "전국구"를 볼모로 잡아놓았다면 어땠을까.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게 난 아직도 아쉽다.
9.
자, 나는 정동영계가 노무현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친노세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말도 안 되게' 써 봤다. 이 글이, 감정적으로 써 놓은 글이라, Fact는 다시 정리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내 기억에 남는 몇가지 사건만을 회고한 것 뿐이니.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최소한 이 사회가 이런 식으로 진실을 모른 채로 무조건 정동영을, 호남을 이해하여야 한다고 한다면, 최소한 '대한민국 정당정치'상의 정의는 실종된다는 것이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 이 글 정동영 까려고 썼다. 이렇게 짓밟혔다고 알리려고 썼다.
최소한.
정동영이 얼굴이 있고 양심이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뜻을 받들겠다고 하면 안 된다는 거다. 그토록 갈기갈기 찢고 짓밟고, 뭉개트린, 당신이 그러면 안 된다는 거다. 호남이, 카르텔 만들어서 자기 새끼만을 살리려, 고향만을 살리려 이러면 안 된다고 울면서 썼다.
최소한,
정동영이 노통 서거 그 순간,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겠다" 따위의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려고 했던 그 목표인 정당정치의 기본을 그렇게 무시한 당신들이 그렇게 이용해선 안 된다는 거다. 민주당이 공천 안 줘서 삐져서 나가, 그저 자리 하나 차지하겠다고 치사하게 '고향에서' '그것도 거저먹는'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래놓고 노무현 후계자를 자처하면 안 된다는 거다.(아직 자처했는지 아닌진 모르겠다)
10.
글 맺자.
이거 아니다. 이렇게 한국정치가 가면 안 된다. 배신자가 문제가 아니다. 정신의 문제다. 이렇게 비열하고 치사하고 뭣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정동영이 노통의 뒤를 이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면, 진짜 노빠. 혀 깨물고 죽겠다. 2002년 빚, 5년동안 갚았다. 지가 못 큰거까지 노통을 욕해서 안 된다. 자기가 못한거 5년 내내 두고두고 욕했다. 그거, 과분하게 갚은거다. 유산까지 손대면 안 된다. 친노가 먹던 말던은 두번째다. 최소한, 정동영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쓰려고 하면 안 된다. 그건, 비겁한거다.
<맺는 글> 이 글은, 그럴수도, 아닐수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써 놓는 이유는, 명예훼손 걸리기 싫습니다. 개인적인 회고록과 더불어 야사임을 밝혀둡니다.
<맺는 글 2> 이 글에 딴지 거시려는 관계자 혹은 다른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공개적으로 써주세요. 2탄은 곧 쓸껍니다. 반론, 딴지, 뭐든 환영합니다. 적나라하게 까고 시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