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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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물 - 노무현의 유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02 노무현의 유산 - 2. 어쩔수 없는 의리의 돌쇠, 유시민. (4) by 워즈
  2. 2009/06/01 노무현의 유산 - 1. 어쩔 수 없는 노무현의 남자. 이해찬. (12) by 워즈

1.

유시민이라고 하면 당신은 무슨 생각이 드는가. 전두환의 장세동? 의리의 돌쇠? 그렇다. 유시민 하면 벌써 떠오르는 단어는 '노무현'이다. 노무현의 비공식 경호실장. (공식 경호실장이라 해도 뭐 큰 문제는 없겠지만, 일단 일국의 국회의원까지 지낸 그에게 경호실장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건 실례가 아닐까 한다.) 노무현의 AS맨, 노무현의 영원한 우군. 등등등.. 그를 말할때 빼놓을 수 없는 거, 노무현이다.

변명부터 하자. 실은 유시민 의원을 노무현의 유산 시리즈 1탄으로 하려다가 그건 너무 속보이는 짓이다 싶어, (그래 나 유빠다. 안 감춘다 :p) 그를 두번째로 밀었다. 다른 이유 하나 더 있다. 유시민에 대해 쓰면 내 손과 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울 것 같았다. 미안해서.

2.

내가 유시민에게 미안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치열하게 그처럼 못 싸운게 미안해서. 유시민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 것 같으면서도 못 싸워서, 그래. 그래서 미안했다. 나는 도망갔고, 그는 지켰다. 그 차이다. 나는 파병때도, 탄핵때도, 때로는 너무 차분한 모습으로, 때로는 너무 열정적인 모습으로 노무현을 지켰다. 그게 먼저다. 그에게 붙는 미안한 감정.

3.

유시민, 경주 출생,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제16·17대 국회의원, 100분 토론 진행자. 노무현의 대통령 출마 선언 이후, 절필을 선언하고 '시대의 바리케이트' 앞으로 제일 먼저 달려간 사람.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어, 정당에 화염병을 던지는 심정으로 달려간 사람. 노무현이 부르면 언제나 올 것 같은 사람. '지구상에서 박멸해야할' 상대로서 한나라당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내보이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에 제일 먼저 호응해, 누구의 말대로 '이랬다 저랬다 박쥐새끼잖아' 라는 소리를 들어도 오로지 노무현의 편을 들었던 사실 '가장 노무현스러운' 사람.

그가 가지고 있는 기본 이론의 뼈대는 "온건주의"다. 온건주의. 사람에 대한 온건주의. 그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온정이 아닌 온건주의다) 그의 이 온건주의는 '아무리 말을 험하게 해도' 그의 기본적 소양 자체가 '여린' 사람이라 문제인 거다. 그가 '싸가지 없다'라는 누명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을 숨기지 못하는 이 진짜배기 경상도 남자.

4.

아, 길게 쓸려고 했다.

도저히 못 쓰겠다.

이 남자 생각하면, 노무현 생각나고. 이 남자 생각하면, 한없이 불쌍한 걸 어쩌나. 그가 제일 그같은 이유, "외로워도, 슬퍼도, 욕을 먹어도, 때려 맞아도, 곧 죽어도, 노무현의 애니카 서비스. 사람 하나를 그렇게 열렬히, 완벽하게,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사랑한 남자" 그의 정책적 판단이나, 인간적 면모, 길게 쓸려면 길게 쓰겠으나, 못 쓰겠다. 불쌍해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머리 안 굴리고 욕을 먹고 노무현에게 던지는 돌 자신이 맞겠다고 대들었던, 노무현의 쌍둥이에게 난 더 뭐라 할 말이 없다. 그저 영상 몇개 더 띄어 놓을란다. 이 눈물 그치고 나면, 이 눈물 안 흘릴때쯤 되면, 다시 한번 말하자. 이 남자. 정치인 이전에 남자로 매력적인걸 어쩌나. 내 배를 째시라. 꾸벅.


 다른 그 어떤 동영상보다 가장 유시민을 잘 설명해주는 동영상
"절필선언 직후의 유시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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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거 시리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맞춰 모든 친노들이 결집하고 있는 이때,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됐다. 노통 간거 슬퍼만 하고 있어야 하나. 진도 나가자. 대한민국 개판 오분전 된 이때. 쉴 여유, 우리에게 없다.

그 첫번째 타자. 이해찬이다.

1.

 이쯤해서 노무현, 그의 사람들을 조명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두들겨 맞은 사람들만. 첫 빠따. 이해찬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엄청나게' 두들겨 맞은. 하물며 '내신성적 개판 된' 아이들에게 '최초로 씹힌' 총리 되겠다. 이해찬이 교육부장관 시절에 학교를 다닌 사람은 알겠지만, 그때의 아이들에겐 '공부하는 기계'에서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시절이 그 아이들에게는 '꽤나' 힘든 일이었을게다. 지금까지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을 해야한다는 거.

 그건 아이들에게, 분명 부담이었을 꺼다. 길게 볼 것도 없다. 우리네 사회 풍토가 '생각하는' 걸 둘째치는 사회다 보니, 아이들이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던 것, 그리고 관성에 젖은 교사들의 부추김. 없지 않았던 거다. 아이들, 그래서 이해찬 싫어했다. 더불어, 보수 언론의 찌질한 공격, 이해찬이 아이들을 망쳤다. 라는 것.

2.

 분명한 것은 그가 추구했던 가치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거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그의 '행동'이야 인간이라 비판 못 할 것이 무엇이랴. 다만, '가치'의 문제를 따지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퍼지는 거다. 그냥 미워하면 끝일 수도 있는 문제가 뭔가 하나 더 들어가야 하는 거다.

 그래, 그랬다. 그 시절은 IMF를 겪은 세대였다는 거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가족이 헤어질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가진 세대였다는 거. 그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거다. 언제 내가 뒤쳐질줄 모르는데, 우리 사회는 변하지 않고 있는데, 교육은 변화하려고 하니 제대로 될리가 있나. 세상의 모든 변화는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데. 가진 자들은 더욱 자신의 카르텔을 철옹성으로 만들고 있는데, 그게 될리가 있나.

 억울한 시절, 억울한 사회를 사는 이 아이들에겐 이해찬이 안 맞았던 거다. 당장 살아야 한다고 누누히 보고 느낀 아이들에게 그것은 안 맞았던 거다. 딱 거기까지였던 거다. 그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는 그 절박한 시절만을 느꼈던 거다.

 그래, 그땐 그랬던 거다.

 3.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못 만들어냈다는 것은 분명 이 사회의 실수다. 그건 이 사회가 가져야 할 '기본적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 희생양을 그 아이들에게, 그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이해찬'에게 돌렸다. 열정이나 패기, 심지어 오기와 객기 역시 '자존감'이라고 하는 가장 기초적인 '의식'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을 무시하고 표현되어진 것들만 부족하다고 하는 구박만을 한 거다.

 그 책임, 이해찬이 욕먹는 것으로 끝났다. 공급자 중심의 한국 교육, 수요자 중심의 교육으로 바꾸려던, 가장 큰 이 사회의 폐단과 온갖 악습이 지배했던 한국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그가 가졌던 가장 큰 리스크. 오히려, 대한민국 교육史에 한 획을 그었던 이해찬, 그 한방으로 끝났다. 이 사회가 져야 할 책임, 혼자 독박쓰면서.

 4.

 이해찬을 논한다면, 그의 민주화 경력을 한번 읊어주는 것이 예의다. 이해찬에 대한 민주화 운동에 족적은 내가 설명 안 해도, 검색 몇번만 하면 알 일이긴 한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약간만 설명하자. 이해찬을 말할때 말해야 하는 것이 딱 두가지면 땡인데, 민청학련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그래. 그 억울한 김대중 대통령의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주동자로 '몰아가기'로 인한 투옥. 풉, 웃기는 대한민국의 사회, 그렇게 웃긴 시절, 온 몸으로 버텼다.

 그런 이해찬을 말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 '치밀한 전략참모'. 그와 대화를 했던 사람들은 전부, 그의 해박한 지식과 전략에 숨이 막힌다 한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평가 받는 사람 딱 둘 있는데, DJ와 이해찬이다. DJ야 워낙 아는게 많아서 사람이 떠난 거고, 이해찬이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한 선거전략통이니 당연한 말이다.

 5.

 사실은, 이 단락을 위해서 이 글을 썼다. 그래, 억울한 이해찬, 친노가 폐족되면서, 그 폐족을 이끌었던 그가 간절히 살아나길 바라며 이 글을 쓴게 사실이다. 억울하게 폐족당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에 대한 오해, 풀어지길 바라면서 이 글 썼다.

 누가 그러더라. 그는 너무 강하다고, 그는 너무 심하다고, 그는 너무 독하다고. 내 한마디 했다. 그정도 독했기에 지금까지 살아 남아있었던 거라고, 겨우 살아남은 거라고. 이 사회가 만약, 그가 지금보다 약했다면 그는 지금쯤 이 세상에 남아있지 못하고 스스로 죽었을 꺼라고. 이해찬은, 그런 사람이라고. 그 한마디 해주고 말았다. 왜? 그게 내 진심이니까. 강하고 강하지만 약한 이해찬이 내 눈엔 보이니까. 골프치고 싶어서 골프가 좋아서 '골프치는게 어떠냐' 라고 반문했던(사실은 억울해하는 걸로 보였다. [웃음]) 그였으니까.

 그에 대해서 내가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유시민이 <청양 이 면장댁 셋째아들 이해찬>에 썼던 글로 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싶다.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정치인, 죽을 지도 모르는 길 당당히 가는 정치인, 주권자인 국민이 '아직' 모르는 정치인. '무조건' 감정으로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정치인.

 겨우 살아남은 그가 이 사회를 조금 더 따듯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노빠의 한량없는 오지랖에다 일방적인 편 들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할 수 없다. 편 들란다. 난 도저히 이 하량없는 꼰대스러운 여린 남자를 그냥 내버려둘수가 없다. 배 째셔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꾸벅.


 

이해찬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사무사(思無邪)의 정치인’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삿되거나 간사한 언행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매 순간 선택을 요구받는 것이 정치인데, 그는 스스로 정당화할 수 없는 타협이나 아부를 절대 하지 않는다. 1991년 첫 지방의회 선거 당시 그는 평민당 지도부가 돈 공천을 하면 탈당하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자 예고한 대로 탈당했다.

2002년 여름 국민경선을 통해 선출한 노무현 후보를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낙마시키려는 반칙 행위가 민주당을 정치적 파산 상태로 몰아넣었을 때 이해찬은 노무현 후보 선대위의 핵심요직을 맡아 승리를 일구어냈다.

선거에 지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정치인의 바른 도리라는 단순한 원칙에 따른 행동이었다. 이런 선택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할 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다른 사람의 삿된 행위에 대해서도 묵인하거나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정치인이기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청양 이 면장댁 셋째아들 이해찬> 中


부탁말씀 - 알럽찬분들이 많이 들어오시던데, 인터뷰 한번 따게 도와주세요. 방명록에 비밀글로 남겨주시면 감사 (웃음)
보너스 - 감상해보시라



전설이 되어버린 "캠프가 망했어요" 유시민 이해찬 지지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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